의미(Bedeutung)의 문제

- J.P.Grice의 '의미' 개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

Grice의 분석에서 결정적인 결함은 그가 의미를 한편으로 화자의 의도와, 다른 한편으로 청자의 반응으로만 설명하려는 데 있다. 그러한 관찰 방식은 언어적인 것을 언어외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려고 하는 행동주의적 언어철학관을 근본으로 한다.

그는 또한 언어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고, 언어를 수단으로만 생각하였다. 이것은 화행이론가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로서, 의미분석에 있어 관습적인 의미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Grice가 행한 특정한 발화상황의 구조 분석이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의도와 의미가 연관된다는 그의 근본 생각과, 대화 원칙과 대화 함의 사이에 논리적 연관관계를 지으려고 한 그의 시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자신이 화자 혹은 청자로서 참여하는 일상적 발화행위에서 그 일부분을 구성하는 언어의 제도적인 본질에 관심을 돌리게 한다. 바로 이 점에 그의 공적이 있다고 하겠다.

대화상에서 대화 함의가 숨겨져 있거나 함의적인 의미가 문제시될 때, Grice의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그것은 '자연적 의미'가 아니라 분명히 '비자연적인 의미'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Grice가 중점적으로 연구한 '비자연적 의미'에 대한 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은 의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왜냐하면 관습(Konvention)이 비자연적 의미를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들은 의도와 의미와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모든 점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의미의 분석은 관습적인 의미와 그 기능을 인정하고, 그것과 의도적인 상황적 의미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분석이 없이는 화자, 표현, 그 기능의 관계, 나아가서 의사소통과 함의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실린 곳: 죽포 정경석 교수 정년기념 논문집, 1986, pp.95-112)